배추전 by

별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음이 혀로 느껴진다. 밀가루, 소금, 그리고 달큰한 배춧잎. 정말 이게 전부다. 곁들이는 것도 식초와 간장을 섞은 초간장이면 충분하다. 초고추장을 함께 먹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정석은 아무래도 초간장이다. 죽을 때까지 한 종류의 음식만을 먹을 수 있다면 아마 배추전을 고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배추는 이파리 부분이 좋다. 하지만 배춧대도 씹으면 고소한 물이 혀뒷쪽으로 넘어가는 맛이 있다. 서울애들은 배추전에 익숙하지 않다. 배추전이라는 음식이 존재하는 것도 모르는 사람도 있더라. 나에게 소울푸드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1순위로 올 음식은 배추전일 것이다. 대구에 자주내려가던 때가 있었다. 늦게 도착한 손녀가 좋아하는 배추전 반죽을 해놓으신 할머니는 불을 켜면 바퀴벌레가 후닥닥 도망가는 그 부엌에서 다 큰 손녀를 위해 저녁 12시가 넘는 시간에도 배추전을 부쳐주시곤 했다. 할머니의 부엌은 어딘가 쾨쾨한 기름때가 천장부터 가득차 있지만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낡은 우윳빛깔 사기접시에 빛바랜 모란꽃무늬가 누워있는 위에 살짝 탄 내가 눌어붙은 배추전이 올라온다. 다 식은 배추전은 손으로 죽죽 찢어먹는 맛이있고, 뜨거운 배추전은 그대로 젓가락으로 갈라 먹는 재미가 있다. 길게 찢긴 배추를 젓가락으로 도르르말아 초장 그릇에 푹하고 찍어 입에 밀어 넣는다. 아삭한 배추를 감싼 기름진 밀가루가 혀에 닿는다. 너무 바삭하지 않고 살짝 무른 맛이 도는 밀가루는 말랑하지만 쫀득하다. 배추는 숨이 아주 죽지도, 그렇다고 너무 생생하지도 않은 그 상태가 딱 좋다. 김치에 들어가는 애랑은 다른 애 같다. 사람도 그런 사람있잖아. 어떨 때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그 애처럼 배추도 요망한 채소다. 두세잎 붙여 적당히 지진 배추전이 먹고 싶어지는 밤이다. 할머니도 보고싶은 밤이다. 보고싶은 사람도 보고싶은 밤이다. 모진 마음에 적당히 밀가루물을 묻혀 후라이팬에 지지면 달큰히 익는 밤이다. 말랑말랑 해진 그 것은 입 안에서는 또한 아삭히 씹힐 것이다. 뱃속에 들어가면 또 잊혀진 채로 며칠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오늘과 같은 그 밤에 생각이 나겠지. 어쨌거나 소울푸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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