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cturnal animals by

야행성 인간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결국 생각의 끝자락엔 녹터널 애니멀스가 있었다. 무섭다. 극장에 가서 봤던 이 영화는 영화의 완성도로만 보자면 상당히 훌륭한 영화였다. 하지만 나같은 인간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심장이 발을 동동구르다 못해 저리고 아프기까지 한 영화라 다시 보기는 틀림없이 힘들 것이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주제다. 육덕미 넘치는 출렁임으로 시작하는 화면은 부의 정점을 찍는 여자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공한 갤러리 관장으로서의 삶. 우아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세련된 인테리어. 그리고 멋진 남편(하지만 출장을 간다). 여자에게 배달된 소포는 그저 소포일 뿐이지만 소포를 뜯던 손이 다치던가, 그랬던 것 같다. 수십년 전 애인으로부터의 소설. 그녀에게 바친다는 그 소설의 내용이 영화의 주요 장면을 이룬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설정과 난폭 폭력으로 난무한 화면은 보는 내내 기분이 암울했고 무서웠으며 공포감에 좌절감까지 들게 만들었다. 결국 그녀로부터 기인했다는 전애인의 그 소설은- 아무리 예술성을 차치하고서라도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남자를 버려야 했던 여자의 선택이 옳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비현실적인 폭력성의 경계에서 난 한숨을 쉬고 경계선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영화 자체가 편안하지 않았다. 

생각의 흐름대로 글을 쓰다 보니 샛길로 새 버렸는데, 중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일단 초저녁에는 저녁 먹어라 공부해라 잔소리하시던 부모님이 주무시는 시간이란 것이 가장 큰 작용을 했다. 대한민국 가정집의 전형적인 촌스러움에 구할을 담당하는 형광등을 꺼놓고, 그맘때 학생들의 책상 위의 6할 이상을 차지하던 인버터 스탠드(주로 빨간색이 많았다)를 켜놓고, 골드스타라고 선명하게 적혀있는 테잎재생 겸용 조그만 라디오를 91.9에 맞추면 완벽한 나의 밤이 시작되었다.

이소라의 음악도시에서 유희열의 ATM, 영화음악에서 깊은 밤엔 락이좋다 까지 MBC의 새벽메인 프로그램을 다 듣고 나면 4시 정도는 되었던 것 같은데, 꽤 많은 밤을 깊은 밤엔 락이 좋다까지 들었던 것 같다. 최윤영과 여러 아나운서가 지나갔던 영화음악 프로그램에서는 주말마다 귀로 듣는 영화를 해줬는데 그게 또 그렇게 좋았지. 테잎에다 좋은 노래는 몇 번이고 녹음해 나만의 테잎을 만들어 보관하곤 했었다. 고등학교 때 유희열의 ATM막방 떄 울던 유희열의 생생학 육성까지 아직 내 테잎저장고엔 남아있다지. 지금처럼 유명해질 줄은 몰랐더랬다. 깊은 밤엔 락이 좋다는 굉장히 경쾌한 목소리의 남자 아나운서가 진행했는데 느끼했다. 이름이 기억이 잘 안나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나의 뇌세포는 퇴화하고 있는 중인거다.

부치지 못한 편지, 건네지 못한 편지를 주로 썼다. 가장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에게, 가장 마음이 가는 이성 친구에게 몇 번이나 펜을 들어 끄적였던 감성의 산물을 이성의 아침에는 결국 책가방에 넣을 수 없었다. 인간에 대한 나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 줄 친구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땐 그랬다.

살아오면서 남에게 손으로 받은 편지를 받을 때마다 감동하곤 했는데, 나이가 들며 그 감동이 기억력과 같이 퇴화하고 있다고 느낀다. 특히 내가 주는 감정보다 받는 감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수많은 편지들은, 안타깝게도 나에게 감흥이 없었다. 인간적으로 미안하게는 생각한다. 당신이 주는 만큼 당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잔인성에는 스스로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누구보다 냉정하고 차갑고 못됐으니까. 그 마음을 아끼고 아껴, 오롯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할 때에만 스스로가 만족스러웠다. 그런게, 그 마음을 받았던 사람들도 그랬을까? 어렸을 땐 몰랐지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 결국 기승전 잔인인건가. 밤에 쓰여진 마음이 가진 숙명적 잔혹성을 떠올릴 때면 아마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도 같이 떠오르겠지. 나의 업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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